[산업일보]
민간소비를 부양하기 위한 단기적 거시정책보다는, 중장기적으로 실질구매력을 높일 수 있는 구조개혁 정책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나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 정규철 실장과 마창석 연구위원은 13일 기획재정부 브리핑실에서 ‘KDI 현안 분석-고물가와 소비부진: 소득과 소비의 상대가격을 중심으로’ 보고서를 발표하며 이같이 전했다.
마창석 연구위원은 “최근의 민간소비 부진은, 소비자물가가 소득물가보다 빠르게 상승한 현상을 원인 중 하나로 보고 있다”라고 운을 뗐다.
흔히 실질 GDP를 실질소득이라고 하는데,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 봤을 때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이 실질소득과 실질민간소비 간의 구조적 괴리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실질민간소비는 코로나19 당시 대면 활동 제약으로 크게 위축됐는데, 종식 단계에 접어든 2023년에도 실질소득의 상승만큼 실질민간소비가 상승하지 못했다. 반면, 명목민간소비는 명목소득만큼 상승하는 흐름을 보였다.
명목소득은 화폐금액으로 표기된 소득이고, 실질소득은 명목소득을 당해 연도 물가로 나눈 값이다. 마 연구위원은 “실질과 명목의 차이는 가격에 변동성이 반영되었는가 차이”라며 “최근 실질민간소비 부진 이해를 위해서는 소득의 가격과 소비자의 가격, 즉 소비자물가 두 가격의 추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가계 예산은 현재와 미래 명목지출의 총합이 명목소득과 자산에서 부채를 뺀 명목순자산의 총합을 초과할 수 없다는 제약이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명목소득은 명목지출의 흐름을 결정하는 주요인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비품목에 인플레이션이 온다면 구매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반대로 소득이 늘어나면 구매가 늘어난다. 결국, 실질구매력은 소비자물가나 소득의 가격이 바뀌면 변동을 겪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2022년 이후 소비자물가는 연평균 3.9%로 소득물가 (GDP 디플레이터, 연평균 1.7%)보다 빠르게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결과 상대가격은 2022년 3%, 2023년 1.3% 하락하게 되어 실질구매력을 3.6% 감소시키는 악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마창석 연구위원은 “상대가격의 영향을 미치는 변동 요인 분석을 위해 국제유가, 반도체, 가격, 환율 등의 변수를 활용했고 분석기간은 2001년부터 2023년까지로 설정했다”라며 “분석 결과, 국제유가 하락이나 반도체 가격 상승은 상대가격 상승률 증가로 이어진다는 것을 확인했다”라고 전했다.
국제유가 하락은 기업의 생산비용 증가에 영향을 줘 소비자 물가 상승 요인이 되고, 반도체 가격 증가는 수출물가의 상승, 명목 GDP 상승으로 이어져 결국 소득 물가도 높아진다는 결과를 얻어냈다는 것이다.
2022년 상대가격 하락은 국제유가 급등에, 2023년은 반도체 가격 급락에 기인한다는 것이 마 연구위원의 분석이다.
그는 “이 분석 결과를 활용해 올해 상대가격 상승률 전망을 위한 3가지 시나리오를 가정했다”라고도 언급했다.
‘기준’ 시나리오는 국제유가가 연간 6% 상승. 반도체 가격이 37% 상승 했을 때고, ‘저위’ 시나리오는 국제유가가 2/4분기 이하 100달러를 지속하며 18% 상승, 반도체 가격은 1/4분기 수준으로 유지되며 22% 상승한다고 가정했다. ‘고위’ 시나리오는 2/4분기 이후 국제유가가 80달러 수준으로 안정되고 반도체 가격은 연간 50% 상승하는 것으로 전망했다.
시나리오 분석 결과, 지정학적 위험 등 향후 국제유가 흐름에 상당한 불확실성이 있겠으나 반도체 가격의 급증으로 모든 시나리오에서 상승이 전망됐다.
2022년부터 작년까지 지속됐던 급격한 상대가격 하락 추세가 완만한 상승 추세로 반전되며 실질구매력 증가와 실질민간소비 여건 개선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마창석 연구위원은 “상대가격에 의한 실질민간소비 부진이 개선되고, 실질경제성장률 확대로 증가 여력도 있다고 판단된다”라며 “부양책이 안정화되고 있는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어, 민간소비 부양을 위한 단기적인 거시정책 필요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실질구매력을 높일 수 있는 구조개혁 정책에 더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정규철 실장은 “내수 부진의 큰 이유는 고물가를 해소하기 위한 고금리정책으로 내수를 둔화시켰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여기서 내수부양책을 사용한다면 물가 안정을 위해 내수부진의 고통을 감내한 것이 고물가로 되돌아가는 위험이 있어, 다양한 재정확장정책에 대해선 부정적이다”라고 밝혔다.